수빈이네 사는 이야기

대구 근대 골목투어..

수빈사랑 2013. 3. 3. 12:58

F11을 누르고 시원시원하게 보세요..

   

 

 

 

 

※ 사진량이 많습니다..

 

 

 

 

 

잔뜩 흐린 일요일 오전..

 

예전부터 해보고 싶었던 대구 근대 골목투어를 하기로 하고 오랜만에 시내로 향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먼저 서문시장에 들러 납작만두, 김밥, 우동으로 브런치를 때우고..

 

통영에 충무김밥처럼 대구에 납작만두..

참 별거없는데..

묘하게 한번씩 땡길 때가 있다..

 

 

 

 

 

 

 

서문시장.. 참 오랜만에 왔네..

 

 

 

 

 

 

 

 

시장안 먹거리 골목 풍경..

 

 

 

 

 

 

 

 

시장안..

 

 

 

 

 

 

 

 

국화빵도 한봉지 사들고..

 

 

 

 

 

 

 

 

대구도시철도 3호선이 동산병원과 서문시장 사이를 지난다..

내년 여름이면 이 모노레일 위를 달릴 수 있겠지..

 

 

 

서문시장에서 육교를 건너 동산병원을 지나면..

 

 

 

 

 

 

골목투어 출발점인 의료선교박물관이 나온다..

 

 

 

 

 

 

 

 

 

대구시 중구청에서 골목투어를 여러가지 코스로 만들어 놓았는데..

우리는 가장 많이한다는 2코스를 택했다..

 

2코스는 이곳 동산청라언덕을 출발하여 3.1만세운동길 - 계산성당 - 이상화/서상동 고택 - 뽕나무골목 - 약령시를 거쳐 종로 진골목 화교협회소학교까지 이어진다.

(약 2시간 소요)

 

코스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맨아래 중구청 대구근대골목 홈페이지 링크를 참조하세요..

 

 

 

 

 

 

스윗즈 주택인 의료선교박물관

 

 

 

 

 

 

 

 

대구사과의 효시가 된 사과나무(3세목)..

 

 

 

 

 

 

 

 

 

 

 

 

 

 

 

 

 

벌써 목련이 싹을 틔우고 있네..

 

 

 

 

 

 

 

 

스윗즈 주택..

 

 

 

 

 

 

 

 

 

 

 

 

 

 

 

 

 

챔니스 주택인 의료박물관..

드라마 <각시탈>에서 기무라 슌지(박기웅)의 자취집으로 나온 곳이며 드라마 <사랑비>에서 윤아가 입원해 있었던 장소란다..

 

 

 

 

 

 

 

 

이곳은 작곡가 박태준이 지은 "동무생각"의 배경이 된 청라언덕..

 

 

 

 

 

 

 

 

 

 

 

 

 

 

 

 

 

 

 

 

 

 

 

 

 

 

청라언덕과 계산성당 사이의 3.1만세운동 계단..

 

1919년 서울에서 일어난 3․1운동이 3월 8일 오후 대구에서도 일어났다.

제일교회 신관 왼편의 3․1운동 계단에서부터 동산박물관을 지나 이어진 길이다.

3․1운동 당시 대구의 학생들이 일본경찰을 피해 은신한 곳이다.

계성학교, 신명학교, 대구고보 등의 다양한 학생들이 이곳을 지나 3․1운동 집결지로 행진했다. (대구근대골목 홈페이지 발췌)

 

 

 

 

 

 

 

 

계단을 내려오며..

 

 

 

 

 

 

 

 

인쇄골목에서 계산성당으로 나오는 길에 있는 방향 조형물..

 

 

 

 

 

 

 

 

게산성당..

 

10mm로 시원시원하게 쫙~ 펼쳐보자..

 

 

계산성당은 1899년 처음에는 로베르 신부에 의해 한옥으로 지어졌다.

하지만 1901년에 전소되었고 1902년에 프와넬 신부에 의해 설계되어 지금의 건물이 되었다.

아름다운 설계와 100년의 긴 전통 때문에 성당은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사적 제290호로 지정되어 있다.

우뚝 솟은 쌍탑이 특징인 계산성당은 고풍스러운 내부와 건축물의 아름다움 덕분에 많은 유명인사들이 결혼식을 올리러 찾아오는 장소이기도 하다.

성당 내부에는 한복을 입은 사람들이 스테인드 글라스에 새겨져 있는데 조선시대 천주교 박해 때 순교했던 성인을 의미한다.

계산성당은 경상도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으로 대구 가톨릭의 역사뿐만 아니라 경북지역 가톨릭의 중심지로 백여년이 넘는 시간을 함께 해왔다. 
(대구근대골목 홈페이지 발췌)

 

 

 

 

 

 

 

 

일요일이라 예배보러 온 신자분들이 많았다..

성당옆 매일신문 사옥에서 따뜻한 커피 한잔으로 스산함을 지우고..

 

 

 

 

 

 

 

계산성당 바로 옆 뽕나무골목..

 

뽕나무 골목이라는 지명은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파병온 명나라 장군 두사충이 전쟁이 끝난 후에도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조선에 귀화하여 임금에게 대구의 땅을 하사받게 되는데 그 땅에 경상감영이 들어서자 그곳을 내어놓고 계산동 일대에 자리잡고 살았다.

그는 이곳에 뽕나무를 심어 생업을 이어나갔다고 하는데 지금도 이 일대는 뽕나무 골목으로 불리며 두사충에 관련된 설화들이 벽화로 그려져 있다.

근대시대에 대구를 대표하는 예술가인 시인 이상화, 화가 이인성, 소설가 현진건 등이 이곳에 모여 살아 예술가 골목으로 불리기도 한다.

 (대구근대골목 홈페이지 발췌)

 

 

 

 

 

 

 

 

이상화고택..

 

 

 

 

 

 

 

 

이상화고택 내부..


항일시인 이상화가 1939년부터 1943년 사망하기 전까지 살았던 집이다.

상화는 건강악화로 사망하기 직전까지 예술혼을 불태우며 작품활동을 했지만 상화의 시가 조선인들에게 영향을 미칠 것을 생각한 일제 순사가 상화의 원고를 모두 압수해 갔다.

그런 이유로 상화는 생전에 시집 하나 발간하지 못했던 안타까운 시인으로 남게 되었다.

1943년 상화는 빼앗긴 들에 봄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

최근 개발로 허물어 질 뻔 했지만 시민들의 도움으로 철거를 면하고 상화와 그의 문학을 기념하는 기념관으로 남게 되었다.

고택 안에는 상화의 작품세계와 생애가 정리되어 있어 상화와 상화의 문학세계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상화선생은 떠났지만 그의 시와 함께 고택 곳곳에 선생의 흔적과 역사가 남아있다..(대구근대골목 홈페이지 발췌)


 

 

 

 

 

 

서상돈 고택..

 

국채보상운동을 통해 국권 회복을 꿈꿨던 민족 운동가 서상돈의 고택.

구한말 시대의 장사꾼으로, 청렴한 선비로, 교육가로 산 서상돈 선생이 머물렀던 곳이다.

1850년 김천에서 태어난 선생은 17살 때부터 보부상을 하기 시작해 큰돈을 벌었고 대지주가 되었다.

선생은 나라를 위해 자신의 부를 많이 썼다고 한다. 또한 선생은 국채보상운동을 제의하고 시작하게 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선생은 구한말부터 63세의 일기로 별세할 때까지 민족을 생각하며 민족을 위해 일했던 진정한 민족운동가였다.

서상돈의 고택은 이상화 고택과 마찬가지로 초고층 건물이 건설될 때 철거될 위기에 처했으나 시민들의 서명운동과 후원으로 지금까지 보존되고 있다.

(대구근대골목 홈페이지 발췌)

 

 

 

 

 

 

 

 

 

 

 

 

 

 

 

(구) 제일교회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0호로 지정된 대구제일교회의 구예배당이다.

1994년에 새로운 예배당이 건립됨에 따라 지금 이곳은 선교관 형태로 쓰이고 있다.

제일교회는 1893년에 대구경북지방 최초의 기독교 교회인 남성정 교회를 모태로 시작했다.

처음에는 기와집을 구입해서 예배를 드리다가 성도가 점차 많아지고 교회의 규모가 커지면서 1908년에 단층 교회를 신축하게 되었고 이후 1933년 벽돌조의 교회당을 신축했다.

1937년 종탑을 세우며 현재의 교회 모습이 완성됐다.

건물 전체에 근대의 고딕양식이 잘 나타나 있어 근대 건축물 연구에도 큰 자료가 된다.(대구근대골목 홈페이지 발췌)

 

 

 

 

 

 

 

 

 

 

 

 

 

 

 

 

 

한의약박물관..

 

 

 

 

 

 

 

 

화교협회

 

종로에는 화교의 역사가 함께 담겨 있는데 화교는 근대에 들어 이곳 종로에서 포목업, 건축업, 요식업 등을 하며 경제적으로 정착했고

학교를 세우고 협회를 창설하며 이곳에 화교 사회를 만들었다.

원래 대구 갑부 서병국의 저택을 화교협회에서 매입하여 아직까지 협회건물로 쓰고 있고 현재 부지 내에 화교 소학교도 들어서 있다.

현 화교협회 건물은 80년이 넘었지만 보존상태가 좋아 문화재적 가치가 크다.

화교협회 건물은 근대 건축물 등록 문화재제252호로 등록되어 있다.(대구근대골목 홈페이지 발췌)

 

 

 

 

 

 

 

 

화교협회 소학교 담장..

 

 

 

 

 

 

 

 

종로거리 이곳저곳의 조형물..

 

종로는 서울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대구에서 종로는 옛 영남제일관에서 포정문까지 직선으로 곧게 뻗은 길을 말한다.

'길다'라는 뜻의 경상도 방언에서 붙여진 진골목은 종로를 비껴가는 400m 정도의 긴 통로다.

조선시대 지체 높은 양반들이 행차를 하면 평민들은 땅에 엎드려야 했기에 바쁜 상인들이나 평민들은 종로 안쪽의 아주 좁은 이 길(진골목)로 다니곤 했다.

 

 

 

 

 

 

 

 

 

 

 

 

 

대구 번화로의 중심지.. 동성로 대구백화점(대백)앞...

 

예전에 아내랑 연애할때는 자주 나왔었는데..

 

대구에 살면서도 이곳에 다시 나온게 몇년만인지 기억도 안난다.. (한 10년 되려나...)

 

너무 많이 바뀌었슴에 현기증이 날 정도다...

 

 

 

 

 

 

 

 

아무리 둘러봐도 나 같은 40대 중년은 눈 닦고 찾아봐도 안보인다...ㅠㅠ

 

순간.. 세대와 단절되어 가는 자신이 외톨이가 된 듯 한 기분...

 

으..... 씁쓸......

 

 

 

 

 

 

 

 

아~~  어지럽다...

 

 

 

 

 

나가사끼 짬뽕과 소유라멘, 까츠동이 맛있다는 사야까에서 온가족 맛있게 배두드리며 지하철타고 집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