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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를 보내며...

수빈사랑 2005. 12. 31. 12:24

 

 

12월 31일.

나이를 먹어갈수록 숫자에 민감해지고, 시간이 참 빠르게 지나간다는걸 새삼 느낍니다. 
참 바쁘고 정신없이 앞만 보고 코에 단내가 나도록 뛰어왔는데,
한해를 마무리하는 매년 이맘때쯤이면 지나온 시간들에 대한 불완전연소와 미련 때문에 항상 후회와 공허함에 젖어듭니다.
그래도 내일, 내년... 다음이란 미래가 있기에 또 한번 元旦의 初心을 품고 한해를 살아가야하겠지만 말입니다. 

한해동안 저희 "수빈사랑" 블로그에 방문해주시고 사랑해주신 모든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새해에는 모두 건강하시고, 소원하시는 일들 다 이루시고, 더욱 사랑하시길 수빈이와 함께 기원합니다.

복 많이 받으세요.

 

이맘때면 생각나는 유희남님의 "겨울한강" 중에 한구절을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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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지 않은 봄.
나이에 맞는 지성과 연륜에 어울리는 감성을 갖고 싶었다. 그러나 늘 안 풀리는 숙제--- 작은 물새 한 마리에도 가슴이 아려지고, 아직도 눈빛이 푸른 별처럼 맑고 고운 사람을 보면 파문같은 전율을 느낀다. 가슴 태우며 오래오래 흔들린다.
그러나 이것은 내 속에서만 비누거품처럼 일다 지는 작은 반란일 뿐, 표면은 꽝꽝 얼어붙은 빙판이다. 그래서 남들은 나를 퍽 차고 쌀쌀한 사람으로 보는지 모른다.
한 계절이 바뀔 때마다 유난히 시간과 내 삶의 의미를 자주 생각하는 버릇이 생겼다.
때문에 요즈음 나는 시계를 차지 않는다. 시계의 초침을 바라보노라면, 시한폭탄에 불을 당긴 것처럼 지지직대며 타들어 오는 듯한 강박관념이 덮쳐와 알 수 없는 초조감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다.
나이.
그 시간의 연소에 반비례하는 죽음과의 확실한 약속. 초침이 움직이는 순간에 나는 내 목숨의 하얀 재를 본다.
한웅큼 묻어나는 고독.
근사하게 나이를 먹고 싶다.
나이 값하며, 있을 자리와 떠날 순간과, 이별해야 할 순간을 분명히 하고 싶다.
요즈음 나는 「어른」이란 말이 두렵다. 그냥 시간을 죽이고 밥그릇을 축낸 어른으로 남을까 두렵다.
어쩌면 어른이란 더 많은 외로움을 견뎌내는 존재, 허전함을 교묘하게 침묵으로 위장하며, 아픈 시간도 곪아 버린 상처도 두엄처럼 썩힐 줄 알아야 하는 것이 어른이 갖는 책임의 고통이다. 가능하면 가슴의 동요가 탄로나지 않도록 능숙한 삐에로여야 한다.
명예나 돈, 권력이나 재산, 그런 것들로 자신의 허무함이 가려지지 않을 때, 자식들의 성공으로 더 화려한 치장을 하고, 시간이 지어주는 가슴의 동공을 가릴 줄 아는 것이 능숙한 늙음의 뒷모습이다.
후회 없이 사는 것, 욕심껏, 원하는 모든 것 다 소유하면서, 가까이 가고 싶은 사람 옆에 사는 것, 하고 싶은 것 다 해보면서 사는 것--- 그것이 단 한번뿐인 삶의 완전한 연소이며 잘 사는 것인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