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

춘천마라톤. 그 가슴벅찬 도전기

수빈사랑 2006. 10. 31. 10:32

2006년 10월 29일.

 

새벽 3시반 기상.

간밤에 잠을 설쳤더니 머리가 무겁다.

오전 9시까지 춘천운동장에 도착해야 하는 관계로 4시50분까지 예약한 관광버스 출발지까지 가려면 서둘러야 한다.

함께한 일행들과 아파트 앞에서 만나 약속장소에 도착하니 시간이 20여분정도 남는다.

이른 새벽시간의 도로에는 교회 새벽기도 가는사람, 길거리 청소하시는 환경미화원, 이시각까지 술마시고 노래방으로 휘청거리며 들어가는 젊은이들, 먼곳으로 산행가는 사람들의 버스행렬, 피곤에 찌들어 손님 기다리며 졸고있는 택시기사... 각양각색의 사람들에 분주함으로 도시는 잠들지 않고있다.

 

오전 5시 대구 출발.

동명휴게소를 지나면서 잠을 청한다.

오전7시10분 버스가 정차하는 느낌에 눈을뜨니 치악휴게소.

두시간여 동안 꿀맛같은 단잠을 잔것같아 머리가 개운하다.

휴게소에는 이른시간인데도 우리와 같이 춘천으로 향하는 많은 일행들로 인해 분주하다.

화장실에서 10분이상을 기다려 볼일을 보고 다시 춘천을 향해...

 

오전 8시반 춘천운동장에 도착.

벌써부터 전국에서 온 수많은 달림이들과 동호회사람들로 인해 분주하다.

스트레칭하는 사람들, 아침먹는 사람들, 화장실가는 사람들, 몸풀기 달리기 하는 사람들.

발 디딜틈이 없다.

하긴 풀코스 참가인원 2만명에 응원나온 가족들, 대회스탭들, 자원봉사자들... 4만명 이상이 이곳에 운집해 있겠지...

나도 슬슬 준비를 해 볼까.

우선 탈의장에서 옷갈아 입고, 물품보관소에 베낭 맡기고, 스트레칭과 준비운동...

출발시간이 다가올 수록 긴장감은 점점 더해져만 간다.

 

오전 10시.

드디어 춘천마라톤의 출발을 알리는 총성이 울린다.

우선 선수들이 먼저 출발하고 일반인들은 기록에 따라 A ~ M 그룹까지 나뉘어 분산 출발을 한다.

40여분이 지나서야 내가 속한 K그룹이 출발을 한다.

아마도 후미그룹까지 모두 출발하는데는 한시간 이상이 소요가 되었을 것이다.(2만명이 동일한 스타트라인을 지나야 하므로)

 

자~~~ 이제 출발이다.

스타트라인을 지나며 시계를 맞추고 인파에 떠밀리듯 운동장을 나선다.

도로가에는 응원하는 사람들의 함성소리가 우렁차다.

'저기에 수빈이와 아내에 응원소리가 들렸으면 좋았을것을'하고 생각한다.

달려나가는 인파에 휩쓸려 오버페이스를 하지 않으려고 4시간 20분 페이스메이커 풍선을 바짝 뒤따른다.

운동장을 빠져 나와 광장을 지나 오른쪽으로 돌자 약3km가량 되는 오르막을 오른다.

연습하던대로 보폭과 팔놀림은 짧게하고 한동안을 오르니 이젠 계속 내리막길이 이어진다.

역시나 최대한 무릎관절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가볍게 보폭을 약간 더 벌린다.

종합사격장 입구인 5km 지점을 지나자 급수대가 나온다. 별로 갈증은 없지만 그래도 묵어놔야지.

게토레이 한잔 받아 묵고 다시 달린다. 

계속 완만한 내리막길이다. 오른쪽으로는 시원한 의암호를, 왼쪽으로는 단풍으로 물든 아름다운 산을 사이에 두고 계속 달린다. 정말 아름다운 풍경이다. 세계8대 마라톤에 춘천마라톤이 선정된 이유를 알겠다.

끝도없는 달림이들에 행렬. 터널을 지나면서 누가 시작했는지 모를 함성이 파도를 타고 지나간다.

의암교를 건너면서 경비행기가 댐 아래위로 왕복을 하며 축하를 해준다.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며 잠시나마 마음의 여유를 가지며 완만한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을 달린다.

7.5km지점을 지나면서 이제서야 몸이 풀리는 느낌이다. '오늘 컨디션 죽이네...'

 

 

 

10km지점을 지난다.

또 게토레이 한잔 받아묵고.

기록은 57분 15초.

km당 5분30여초에 시간이다.

뒤돌아 보니 내가 속한 그룹의 4시간 20분 페이스메이커가 보이지 않는다.

약간 오버페이스한 느낌이다.

목표대로 한다면(4시간 20분) km당 6분에 통과해야 하는데...이래선 않되는데 하면서도 어느새 속도에 맞춰져버린 발걸음을 늦추기란 쉽지가 않다.

약간 지루한 오르막이 이어진다.

'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나 다를까 도로가 구석진곳에는 '쉬'를 보는 달림이들이 눈에 띈다. 이래선 않되는데 하면서도 나도 그 대열에 합류한다. 몸이 훨 가벼워 진듯하다. 부르르 함 떨고 다시 달린다. 아무일 없었단 듯이...

 

15km지점을 지난다.

또 게토레이 한잔 받아묵고.

도로가의 농가를 바라본다. 추수가 한창이다. 마을어귀에 나오신 할아버지 할머니들께서 박수로 응원해 주신다. 박사마을을 지난다. 이 마을에는 박사가 몇명이나 나왔길래 마을 이름을 박사마을로 했을까?

마을을 지나니 가파른 오르막이 이어진다. 길진 않지만 치고 오르기가 힘들다. 역시 보폭과 팔을 짧고 경쾌하게...

앞그룹의 4시간 20분 도우미를 지나친다.

 

20km지점을 지난다.

기록은 1시간 52분 44초.

여전히 km당 5분30여초에 기록이다.

속으로 '이대로만 가준다면 서브-4 (4시간이내 완주) 기록 낼수 있겠구나' 자신감마저 든다.

이번에는 쵸코파이를 주네. 쵸코파이하나와 게토레이 한잔, 물한잔을 받아먹고 이번대회의 중간지점(하프 21.0795km)을 지난다.

아~~~ 이제 반 왔다. 온 만큼 가야한다. 마음 다잡아 먹고 계속 달린다.

쵸코파이하나에 힘이 불끈불끈 솟는다.

 

 

25km급수대를 지난다.

이번에는 물만 한잔 받아묵고...

급수대에서 자원봉사하는 소녀들(중학생쯤)에 "힘내세요 오빠~~아"하는 소리에 다시금 힘을낸다.

참 고맙다. 티없이 맑은 미소에 그 아름다운 마음씨...

도로가에 사진대행업체에 카메라를 보고 뒤 따라오시던 아줌마의 굵직한 한마디에 때아닌 웃음이 이어진다. "총가~~악. 나 한번만 박아줘. 복받을껴~~~" 뭘 박아줘???

춘첨댐까지 지루한 오르막길이다. 조금씩 지치는듯한 느낌이다. 다리도 슬슬 무거워져 오고..

춘첨댐을 지나자 완만한 내리막길. '아이고 쪼매 낫네'

자세를 다시한번 고치고. 어깨는 활짝펴고, 궁뎅이는 집어넣고, 팔은 직각으로 내리고, 턱은 당기고, 시선은 전방 10m앞을 보고...

또 한번의 터널을 지나며 또 다시 이어지는 함성에 파도. 와아아아아~~~~~

 

30km지점을 지난다.

기록은 2시간 52분 04초.

20km에서 30km구간은 1시간만에 왔다

km당 6분.

속도가 조금씩 떨어지는 느낌이다.

이번에는 바나나를 주네. 바나나하나와 게토레이 두잔을 받아먹고 좀 쉬면서 스트레칭을 해준다.

왼쪽 무릎과 오른쪽 장딴지 뒷부분에 슬슬 통증이 느껴진다.

지난주 마지막 점검차 가졌던 30km LSD훈련에서와 같이 동일한 구간에 동일한 통증이다.

그래도 이제 10km만 가면 된다(끝다리 떼고). 3/4왔다. sub-4를 위하여 힘을내자...

 

근데.

이게 아니다.

32km를 지나면서 통증은 더 심해오고 33km지점부터는 팔은 움직이는데, 다리가 움직이지가 않는다.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는것을 느낀다.

걷는지 뛰는지 모르게 헥헥대는데 앞에서 인라인봉사자들이 스프레이파스를 뿌려준다.

쪼금 낫다. 그래도 여전히 속도는 떨어지고.

도로가에는 쥐가나서 넘어져있는 사람, 구토하는 사람, 절뚝이며 걷는 사람들...

너무나 고통스러운 1km, 1km구간들이다.

우리그룹에 4시간 20분 페이스메이커가 쌩~~하니 내옆을 지나쳐 간다.

분명 km당 6분에 속력일터인데, 내가 느끼기에는 흡사 100m 전력질주의 스피드가 느껴진다.

도저히 따라 붙을 수가 없다.

 

 

35km 급수대를 지난다.

물마실 힘도 없다.

걷고만 싶다.

아니 가로수 그늘 밑에 그냥 눕고 싶다.

너무나 고통스럽다.

체력이 아예 바닥이 나버렸다.

나는 분명 뛰고는 있는데 누가보면 걷는걸로 착각할 정도의 달림이다.

'내가 왜 이 미친짓을 사서 하고 있는가. 포기하고 싶다.'

순간 수빈이와 아내에 얼굴이 떠오른다.

갑자기 눈시울이 뜨겁다.

'그래 답은 나왔다. 사랑하는 내가족을 위해 달리자. 수빈이와 아내에 맑은 미소와 사랑을 위해 달리자. 달려보는거다.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한다. 수빈아 사랑해. 은이야 사랑해...'

37.5km를 지나면서 스폰지대에서 방울토마토를 준다. 한 웅큼 집어들고 씹으면서 달린다.

다시 조금씩 다리에 힘이 붙는다.

38km부터는 넓고 지루한 도로가 이어진다. 1km가 10km처럼 느껴진다.

 

40km급수대를 지난다.

본격적인 시내구간이라서 그런지 많은 인파들에 응원이 고맙다.

점점더 Finish Line이 가까워지고 있슴을 느낀다. 조금씩 힘이더 난다.

네시간전에 떠나왔던 춘천운동장이 저멀리 보인다.

마지막 결승점을 향해 고통을 이겨내며 달려가는 자랑스런 내 모습을 느낀다.

벅차오르는 감격과 함께 희열을 느낀다.

 

운동장에 들어와서 트랙을 한 바퀴 돈다.  

 

 

 

 

드디어 골인이다.

무의식적으로 기록을 확인해 본다.

4시간 27분 03초.

 

나는 해냈다.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겼다.

사랑하는 수빈이와 아내에게 했던 약속을 지켰다.

5개월전 다시 운동을 시작하면서 10월 춘천마라톤을 완주하겠다고 했을때 아내는 그냥 웃었다.

'쳇. 웃어? 내가 해내나 못해내나 두고봐라. 씨'

그러길 5개월째.

몸무게가 75kg에서 63kg으로 줄었다.

여름내내 오직 한가지 목표만을 위해 헥헥대며 달리고 연습했던 모든 순간들이 버스를 타고 대구로 내려오는 어두운 창밖으로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10시가 넘은 시각에 도착했는데도 안자고 아빠를 기다려준 우리수빈이.

"아빠. 수고하셨습니다."하고 메달을 걸고 아빠에게 안겨 뽀뽀를 해준다.

모든 피로와 힘든시간들이 눈녹듯이 사라져 버린다.

"수빈아! 여보! 사랑한데이..."

 

 

 

아내가 정복을 입을 일이 잘없는데 며칠전 행사때문에 정복입은 모습이 멋있어서 한장 찰칵.

다시한번 "사랑한다 우리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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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이 끝난 후.

 

몸안에 진액이 모두 다 빠져나간 탓일까?

아님 반년동안 화두처럼 지니고 있던 목표가 없어진 탓일까?

 

이밤.

몹시나 우울하다.

아내가 수빈이 낳고 격었던 산후 우울증 같은 것일까.

 

쏘주한잔이 무척이나 생각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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