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원을 관하다..

안동여행.. 도산서원..

수빈사랑 2013. 6. 6. 09:12

F11을 누르고 시원시원하게 보세요..^^*

 

 

 

 

 

 

 

사진량이 다소 많습니다..

 

 

 

 

 

 

 

경북산림과학박물관을 나와 바로 인근의 도산서원을 다시 찾았다..

 

벌써 몇번째 방문인지..

 

최근에 김봉렬교수님의 "한국건축이야기"를 읽고 몇가지 확인 할 것이 있어서 언젠가 한번 다시 들러야지 했는데..

 

마침 잘 되었다..

 

 

 

M-mode, 10-22mm, iso100, 1/250, f5.6~8.0

 

 

 

 

 

 

 

 

 

 

 

 

 

 

 

 

 

 

서원 초입에 제일 먼저 반겨주는 비석..

 

추노지향(鄒魯之鄕)..

 

맹자가 살았던 추와 공자가 살았던 노의 지명을 합쳐서 만든 말로 예의 바르고 학식이 높은 곳이나 또는 그 대상을 가리킬 때 쓰며,

 

이 비석의 글은 공자의 77대손인 대만인 공덕성(孔德成)선생이 예전에 이곳을 방문했을때 기념으로 쓴 글이라고 한다..

 

 

 

 

 

 

 

 

 

비석을 지나 서원을 향하는 길..

 

10mm로 이렇게 거대한(?) 향나무 가로수 길을 만들어 버렸다..ㅎㅎ

 

 

 

 

 

 

 

 

 

 

서편에는 이렇게 서취병이 쭈욱 이어지고..

 

"산의 왼편에는 동취병이 있고, 바른편에는 서취병이 있는데 동취병은 청량산으로부터 내려오며.......  남쪽 8~9리쯤에서..... 합쳐지게 된다.

 

 주변의 봉우리와 계곡들이 모두 도산을 감싸고 숙여드는것 처럼 보인다"

 

당대에 한 풍수 했던 퇴계선생이 51세때 처음 세운 계상서당의 실패를 교훈 삼아, 제자들이 추천한 이곳의 터에 다시 서당을 지으며 선생이 남긴 글이다..

 

주변의 산천들이 도산을 감싸는 공읍지지의 형국..

 

그 공읍지지(拱揖之地)의 그릇 속에 모인 하늘과 땅의 기운.. 바로 호연지기(浩然之氣)가 모아져 있는 곳이 바로 이곳 도산서원이다..

 

 

 

 

 

 

 

 

 

 

이곳 천광운영대 양 옆은 절벽이다..

 

퇴계선생은 동쪽 절벽을 천광대, 서쪽 절벽을 운영대라고 칭했다..

 

구름과 그림자, 하늘이 물에 빠지는 곳..

 

묵은 왕버들이 시선으로 가리우는 곳..

 

바로 천광운영대이다..

 

 

 

원래 서원의 진입로는 지금의 매표소에서 이곳 천광운영대로 이어지는 동선이 아니었다..

 

1969년 도산서원 성역화 사업으로 대대적인 보수공사가 시행되며 상처와 동시에 변질을 맞게 된 것이다..

 

퇴계선생이 만들어 놓은 진입로를 엉뚱하게 서쪽 방향으로 정문을 내버려 곁문으로 들어왔다가 곁문으로 나오는 형상이 되어 버렸다.

 

지금은 이곳 천광운영대에서는 바로 아래 절벽을 볼 수 없지만 예전에는 이곳과 동편 천연대의 절벽을 바라보며 서원에 진입하였을 것이다..

 

진입 동선은 낙동강을 구비보며 유유히 걷다가 서원 입구 곡구암에 와서는 계단을 차곡차곡 밟고 천연대 옆으로 올라 갯버들을 지나고 서원 문에 당도하도록 되어 있었으나,

 

지금은 그 그윽한 정취와 분위기를 우리는 다시 회복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애석하게도 도산서원 성역화 사업이 본래의 취지를 잃고 관광화 사업이 되어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아래 겸제선생의 계상정거도를 참조하시길..

 

(현재 천원권 뒷면의 그림.. 신권 발행 당시 계상정거도의 그림은 도산서원이 아니라 계상서당이라는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었다..)

 

 

 

서당의 좌측에는 천연대가, 우측에는 천광운영대가 그려져 있다..

 

 

 

 

 

 

 

 

 

 

천연대 너머에는 청량산에서 발원한 동취병이 이어지고..

 

에궁 77mm CPL필터 하나 사야지 사야지 사야지!!!

 

어째 사진 하나 하나가 다 희 멀~~건게..

 

 

 

 

 

 

 

 

 

천연대와 시사단.. 오늘은 skip..

 

 

 

 

 

 

 

 

 

 

또하나 상처가 된 이곳 도산서원 앞마당..

 

유홍준교수님이 지적한 부분..

 

아름드리 고목이 그늘을 지어줘 쉬기에는 좋지만 도산서원 성역화 사업때 무려 5미터 이상 높이로 흙을 북돋아 평평하게 만들어 버려서,

 

앞마당의 은행나무, 벚나무, 갯버들이 저리도 기이하게 줄기는 모두 땅에 묻히고 가지들만 지표에 들떠 있어서 마치 한나무가 네그루로 보이고,

 

저 갯버들은 그 용틀임한 가지가 본 줄기가 늘어진 것 처럼 착각하게 되었다.. (10mm로 쫙쫙 펼쳐..)

 

 

 

 

 

 

 

 

 

 

역락서재..

 

서원의 가장 아래에 위치한 건물로 선생의 제자 정지헌(鄭芝軒)을 선생에게 취학시킬 때 지헌의 부친이 특별히 지어준 집으로 현판의 글씨는 퇴계 선생의 친필이다..

 

지금으로 치면 기부입학이 되나?

 

 

 

 

 

 

 

 

 

역락서재 내부.. 3칸구조..

 

 

 

 

 

 

 

 

 

 

도산서당으로 진입..

 

 

 

 

 

 

 

 

 

 

얘는 모란인지 작약인지 모르겠네..

 

 

 

 

 

 

 

 

 

 

서당의 정문 출입구..

 

 

 

 

 

 

 

 

 

 

도산서당..

 

퇴계선생이 공사를 의뢰한 법련은 도산서당 구조를 농운정사와 같은 구조인 "工"자형의 도투마리집 형식으로 만들고자 했지만,

 

퇴계선생은 빗물 처리에 관한 설비적 이유와 프라이버시 침해문제, 일조량문제, 에너지 절약면등을 이유로 반대해 지금의 구조로 지어졌다..

 

좌측의 부엌부터 우측의 암서헌 살평상까지 3-7-8-9-6.5자의 배치구조..

 

칸칸이 길이가 모두 다르다..

 

 

 

 

 

 

 

 

 

서쪽 사립문 통로.. 하고직사의 노비들이 출입하기에 편리하도록 아예 문을 달지 않았다..

 

 

 

 

 

 

 

 

 

 

 

 

 

 

 

 

 

 

 

 

완락재에서 바라본 완락의 공간..

 

 

 

 

 

 

 

 

 

 

퇴계선생의 제자이자 달성 도동서원을 세운 안동부사 한강 정구선생이 암서헌 마루에 살평상을 덧대기 위해 기존의 처마구조에 추가로 덧 댄 부분이 아닐까 하고 유심히 봤는데..

 

도리와 서까래 구조에 대해 문외한이 내가 봐서는 도통...ㅠㅠ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나치는 도산서당과 도산서원을 한눈에 바로볼 수 있는 view point..

 

가운데 붉은선을 기준으로 아래쪽은 도산서당, 윗쪽은 도산서원이다..

 

즉, 아래쪽은 퇴계선생이 생전에 직접 조성한 공간이고, 윗쪽은 제자들에 의해 사후에 조성된 공간인 것이다..

 

구 천원권에 있던 모습이다.. 

 

 

 

 

 

 

 

 

 

 

 

절우사에는 매화나무만.. 난국죽은 어디로?? ㅎㅎ

 

 

 

 

 

 

 

 

 

 

 

 

 

 

 

 

 

 

 

 

 

매번 올때마다 이해가 가지 않았던 강당인 전교당의 구조..

 

고 장영훈교수님이 지적했듯이 풍수지리학적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던 구조..

 

먼저 강당이 왜 4칸의 음택건물이 되었는지..

 

좌청룡 방향의 동협실을 생략하고 왜 1칸을 비워 두었는지..

 

지금으로 치면 대학 총장실인 한존재를 왜 좌상의 공간대신 우하의 공간에 배치했는지..

 

 

 

 

 

 

 

 

 

전교당 마루에 앉아 바라 본 전경..

 

가운데 외삼문 좌우측의 동,서 광명실..

 

서책을 보관하고 열람하기 위해 서원의 증축과 보수과정에서 생겼지만, 이 또한 서원의 입면계획을 여지없이 파괴하였다..

 

동,서 광명실이 없었더라면(다른 위치에 증축했더라면) 이곳에 앉아 병산서원의 만대루같이 낙동강의 경치를 시원하게 조망할 수 있었을텐데,

 

흡사 옥산서원의 무변루처럼 꼭꼭 닫아 두어 갑갑하게 만들어 버렸다..

 

참고로, 이곳 도산서원에는 누각이 없다..

 

주요 서원의 누각은 병산서원 만대루, 옥산서원 무변루, 남계서원 풍영루, 자계서원 영귀루, 소수서원 경렴정,취한대등등..

 

서원은 교육기능과 더불어 선현을 모시는 향사기능을 통해 지역유림을 단합시키는 정치적 목적을 가졌었다..

 

여기서 누각은 그 장소를 제공하기 위해 필수적인 공간이 되어 왔는데,

 

도산서원에 그 누각을 설치하지 않은 이유는 적어도 이곳 만큼은 정치적인 목적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는 의미가 된다..

 

서원중에서도 수위의 서원인 이곳 도산서원은 건물구성 측면에서 철저하게 퇴계의 기념서원으로 건립된 특별한 서원인 셈이다..

 

 

 

 

 

 

 

 

 

 

 

 

 

 

 

 

 

 

 

왜 강당의 동협실이 생략되어 4칸의 음택건물이 되었는지...

 

당시 전국에 수백군데에 달하는 서원에도 등급이 있어서 도산서원처럼 제대로 된 일류서원에서부터 문중의 재산과 인적자원의 보호 같은 사리사욕의 목적으로 세워진 삼류서원까지 다양했다..

 

서원을 평가하는 조건 중 규모, 역사, 배향인물, 전통등등 다양한 조건들이 있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제일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서적을 보관하고 있는가였다..

 

(한때 퇴계선생은 개인적으로 1,000여권의 고서를 도산서당 완락재 서쪽벽을 밀어 보관했다고 한다)

 

분실이나 파손시 다시 보충한 방법이 없었던 그 시절 서로 많은 책을 보유하기 위해 서원들마다 각고의 노력을 했을 것이고,

 

더군다나 언제든지 책을 찍어내기 위한 목판을 가지고 있는 서원은 일류서원 중에서도 수위의 서원이 되었다.

 

주변 서원들은 도산서원에 목판인쇄를 요청하지만, 요청한다고 바로바로 찍어주지 못햇을 터라 그 요청들이 어느 정도 쌓이면

 

각 서원과 서당에 기별하여 인쇄하고 배분했을 것이다.

 

당연히 주위의(특히나 안동 주위 지방은 서원이 많기로 유명했다) 이류 삼류서원들은 도산서원에 연줄을 대고 잘보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을 것이고,

 

그러다 보니 영남 좌강 성리학파의 대스승이신 퇴계선생의 제사때에도 배향을 위해 이곳 상덕사 앞마당에는 주위에서 모여든 사람들로 넘쳐 났을 것이다.

 

그리고 그 많은 인원들을 수용하고 제사를 지휘 통제하기 위해 동협실 한칸을 아예 없애고 전교당 동쪽벽에 문을 달았던 것이다..

 

풍수학적으로는 절대 이해되지 않던 부분도 건축학적 실리론으로 이해하면 간단히 풀어지네..ㅎㅎ

 

 

 

 

 

 

 

 

 

 

전교당 대청에서 동쪽 사당마당쪽으로 난 2개의 영쌍창..

 

 

 

 

 

 

 

 

 

 

이제는 상고직사 쪽으로.. 전사청은 skip..

 

 

 

 

 

 

 

 

 

서재와 상고직사 사이로 하고직사를 향해 난 문..

 

좌상우하의 서원배치 구조에서 나타나는 하고직사, 상고직사, 전사청으로 이어지는 노비들의 서비스 동선이다..

 

하지만 저 문을 통하면 바로 하고직사와 이어져야 하지만 예전 서원정화 사업때 상고직사 아래 콘크리트 유물관을 만들면서 이 동선을 흐트려 버렸다..

 

 

 

 

 

 

 

 

 

노비들의 공간인 상고직사..

 

중앙의 대문을 나가면 연결되는 동선이 없다..ㅠㅠ

 

하고직사는 서당영역을 위한 것이고, 상고직사는 서원영역을 위한 것이다..

 

 

 

 

 

 

 

 

 

상고직사 창고의 기둥 아래 뚤린 구멍..

 

창고에 보관중이던 쌀이라던지 음식을 훔쳐먹는 쥐를 잡기 위해 고양이의 출입이 용이하도록 만들어 놓은 구멍이다..

 

 

 

 

 

 

 

 

 

 

풍수학적으로 봤을때 도산서당으로 생기를 넣어주는 용도의 잉(孕) 나무.. 동광명실 앞에 있다..

 

 

 

 

 

 

 

 

 

1932년에 중창된 하고직사..

 

원래의 모습은 아니지만 이곳 하고직사는 퇴계선생과 제자들의 심부름을 받기에 아주 적합하도록 배치되어 있다..

 

 

 

 

 

 

 

 

 

 

사진 가운데 도산서당 완락재에서 선생이 문을 열고 이곳 하고직사를 향해 "게 아무도 없느냐?"라고 노비들을 부르면

 

 "네~"하고 쏜살같이 달려가기에 적합하도록 동선이 배치되어 있고..

 

 

 

 

 

 

 

 

 

 

가운데 외문 넘어 농운정사에서 제자들이 노비들을 부르면 바로 달려갈 수 있도록 동선 배치되어 있다..

 

선생과 제자들의 부름에 대한 service를 하기에 최상의 공간배치인 것이다..

 

"工"자형 농운정사 건물의 오목한 부분이 "ㄷ"자형 하고직사의 날개부분과 딱 맞도록 설계 되었다..

 

 

 

 

 

 

 

 

 

 

농운정사..

 

동,서재가 따로따로 나뉘어지지 않고 한 건물에 두반이 수용함으로서 선,후배간의 필연적인 경쟁을 유발하게 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오늘은 모처럼만에 방방마다 문을 다 열어 놓았네.. 누가 오나?

 

 

 

 

 

 

 

 

농운정사에서 문화유산 해설사분의 설명을 경청중인 어린이들..

 

 

 

도산서당과 도산서원은 대학자이자 사상가이고, 풍수학자이자 건축가셨던 퇴계선생의 모든 걸 함축적으로 보고 배우고 느낄 수 있어서 자주 찾는다..

 

오늘도 많이 배우고 갑니다..

 

 

 

모처럼만의 서원투어에 두 모녀는 이제 지겨워하고..ㅠㅠ

 

 

 

지난번 도산서원 방문기를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

 

 

 

 

 

참고 문헌 : 김봉렬, 2006, 돌베게, 한국건축사이야기 권3

 

                장영훈, 2005, 도서출판 담디, 조선시대의 명문사학 서원을 가다

 

                유홍준, 1997,2011,  (주) 창비,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권3

 

 

 

 

 

 

 

 

 

'서원을 관하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읍 무성서원  (0) 2022.02.22
도동서원 은행나무..  (0) 2013.11.08
가을.. 도동서원 은행나무..  (0) 2012.11.09
청도.. 자계서원..  (0) 2012.09.17
두번째 병산서원..  (0) 2012.08.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