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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남명 조식선생을 모신 산청 덕천(덕산)서원을 찾았다..
대구에서 고령을 거쳐 합천 생비량면 지나 지리산 중산리 조금 못 미친 시천면에 자리하고 있었다.
덕천서원은 영남 三山서원(도산, 옥산, 덕산서원)중의 하나이고,
산천재와 더불어 빼어난 지리산 산수를 배경으로 영남 우강학파의 거물인 남명조식선생을 모신 곳이다.
(낙동강을 중심으로 좌(左)강학파는 퇴계문하, 우(右)강학파는 남명문하라 칭한다..)
남명 조식선생은 퇴계 이황선생과 동갑이시며 더불어 영남학파의 양대산맥중 한분 이셨다.
"생각은 모나게 해도 행동을 둥글게 하라"라는 퇴계의 교육관과는 반대로,
"모난 생각이 옳다고 생각되면 행동도 모나게 하라"라는 남명의 교육관은 전혀 다른 상반되는 기풍이다..
지행일치를 주장하던 퇴계와 달리 더 강력한 지행합일을 추구하며,
퇴계의 자모 교육이 아닌 남명의 엄부 교육관은 돌아가신 후 터진 임진왜란에서도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전쟁이 발발하자 서로 몸을 숨기기에 급급했던 타 문하생들의 선비들과는 반대로,
지행합일을 교육받은 홍의장군 곽재우, 정인홍, 조종도등 남명 문하생들은 즉시 왜적과 맞써 싸웠다..
불의에 침묵하는 지식인이 아닌 "행동하는 참된 지식인"이었던 것이다.
덕천서원은 애석하게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때 훼철되어 다녀본 다른 서원(소수, 도산, 병산, 옥산서원등)들과 비교했을때,
사실 건축적인 아름다움이 부족한 점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남명선생의 고귀한 선비정신의 세계로 들어가기에는 충분했다..
참고로 고려말 ~ 조선초기 성리학의 계보를 이어오신 분들을 나름대로 정리해 보았다.
포은 정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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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은 길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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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 김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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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필재 김종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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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훤당 김굉필 (달성 도동서원), 일두 정여창 (함양 남계서원), 탁영 김일손 (청도 자계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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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암 조광조 (용인 심곡서원), 회재 이언적 (안강 옥산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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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명 조식 (산청 덕천서원), 퇴계 이황 (안동 도산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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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애 류성용 (안동 병산서원)
노란색 글자색은 조선 5賢을 이른다.
산청.. 덕천서원을 향한다..
남명 조식.. 남명 조식.. 남명 조식......
화두와 같이 머리속에서 맴도는 지리산 호랑이(?) 남명 조식 선생을 모신 덕천서원..
흐린날이지만 엠모드로..
입덕문 석비..
남명선생께서 산천재와 덕천서원이 있는 이곳을 무릉도원이라 칭하셨는데..
바로 이 석비가 있는 이곳부터 무릉도원이 시작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냥 지나치는 곳..
나도 사전에 공부를 안하고 왔으면 그냥 지나쳤겠지..
산천재에 이르기전 약 3km 전방에 있다..
구름에 가린 지리산 천왕봉..
산아래 가운데 부분에 덕천서원이 위치해 있다.
풍수에 문외한인 내가 봐도 지리산의 웅장한 정기를 맘껏 받은 곳이다는 생각이 든다..
서원앞에는 홍살문과 어김없이 학자수인 은행나무가 있고..
외삼문인 시정문..
그냥 지나칠 수 있지만 현판을 유심히 보면,
가운데 정(靜)자의 크기를 시(時)자나 문(門)자보다 더 크게 써서 강조하였다.. 그 이유는..
남명의 동중정(動中靜)사상의 세계로 들어선다는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정중동이 아닌 동중정이다..
덕천서원의 중심 강당인 경의당..
그간 들른 몇군데 서원에서 눈이 너무 호강했었다는 걸 덕천서원을 보고서야 비로소 느낄 수 있었다..
"도산서원과 병산서원을 답사할 때는 주로 건축물에 눈길을 주게 되지만,
그러나 이곳은 그와 달리 건축물보다는 터를 읽어야 하고, 터가 있는 주변산세를 감상하여야 한다."
돌아가신 풍수대가 장영훈 교수님이 말씀하신 바와 같았다..
덕천서원은 창건때 덕산서원이라 했으나 후일 덕천서원이라 고쳤다고 한다.
연화도수형(연꽃이 씨방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여 고개를 숙인다는 형상)인 이곳 덕천서원에서 연꽃과 물은 뗄수없는 관계이기에,
내 천(川)자로 개명되었다고 한다..
안동 병산서원의 만대루 아래에 연못 광영지가 있는 이유와 같다..
동재인 진덕재..
서재인 수업재..
동재에서 바라본 경의당과 사당공간인 숭덕사..
동재 마루..
서재 마루..
경의당..
남명선생은 정신(敬)과 행동(義)은 하나다라고 가르쳤다..
덕천서원의 가장 중요한 공간인 이곳을 경의당이라 칭한 이유이다..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임진왜란 의병에 의(義)자가 바로 이곳 경의당의 의(義)자인 것이다..
경의..
행동하는 참된 지식인...
대들보 가운데 부분에 홈을 파고 두껑으로 덮은걸로 봐서 이곳에 상량문을 넣어 두었나?
경의당에서 내려다 본 시정문..
동재쪽..
경의당 천정..
상량 일시가 적혀 있다..
경의당에서 오른쪽으로 고개들어 보면 안개에 둘러 쌓인 지리산 봉우리들이 보이고..
흐린날이라 ISO100, F5.6,1/30으로 삼각대없이 200mm 당겨찍기에는 역시나 무리가 있네..
촛점도 못잡고..
스팟촛점 모드인데도 200mm로 당겨 찍으니 AF 잘 못잡네.. 에궁..
이래저래 요즘 사진 참 늘지가 않네..
고직사가 있었던 자리라고 하는데..
서원철폐령때 없어져 버렸는지..
휑한 공터에 경판도 없는 건물 한채가 놓여 있다..
참고로 덕천서원에는 고직사(서원관리 노비들의 숙소), 전사청(제사 준비건물), 정료대(조명시설), 장판각(서책인쇄 장판보관건물), 누각등이 없이
오로지 강당, 사당, 동/서재 뿐이다..
내삼문..
자세히 보면 내삼문과 경의당은 동남향으로 10도 정도 틀어져 있다..
이는 풍수학적으로 볼때 산천재를 감싸는 동심원배치 구조라고 할 수 있단다..
남명선생을 모신 숭덕사..
근래 방문한 서원들 중 유일하게 사당 내삼문을 열어 놓았다..
내삼문 앞에 핀 백일홍..
숭덕사 뒤뜰..
풍수학적으로 볼때 지리산 천왕봉에서 발원한 정기가 중봉, 구곡산을 거쳐 연화봉을 지나 이곳 덕천서원 숭덕사 뒤뜰로 내려오도록 한 부분..
잉(孕)도 아니고 지맥선도 아닌...
경의당과 동재 맞물림 각도 역시나 약간이지만 동남쪽으로 틀어져 있다..
역시나 산천재를 향한다..
경의당과 서재 너머로 구름에 쌓인 지리산 영봉들..
날씨 맑은 날에 왔으면 모두 조망할 수 있었을텐데..
군데군데에서 타 서원과 달리 소박하고 검소한 선비정신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경의문 기둥에 그려진 태극문양..
숭덕사 우측벽에 그려진 우백호.. (좌청룡은 못찍었다..ㅠㅠ)
덕천서원 바로 앞에는 오장육부에 끼인 티끌까지 씻어버리라는 의미의 세심정이 있다....
지리산에서 발원하여 유유히 흐르는 시천천..
덕천서원을 나오며..
문묘에 배향도 못되시고,
하물며 서원이 대원군의 서원철폐령때 살아남은 전국 47개서원에 들지 못하고 훼철되어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의구심을 가져본다..
남명선생이 그린 신명사도(神明舍圖)에 적어놓은 국군사사직(國君死社稷) - "국토가 침략당하면 군왕부터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한다"라는 문구처럼,
경과 의를 숭배하며 실천하고 행동하는 참된 지식인이길 원하셨던 선생의 뜻을 가슴 깊이 새겨봄이다..
평생 벼슬을 거부하며 오롯이 처사(處士)이길 원했던 남명선생이야 말로 진정한 선비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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