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원을 관하다..

안동.. 도산서원-1..

수빈사랑 2012. 8. 6. 14:31

 F11을 누르고 보시면 편리합니다..

 

 

 

 

 

서원투어 겸 휴가의 마지막은 도산서원으로 결정했다..

어릴때 부터 여러번 와 봤지만 작정하고 찾은것은 처음이네.

아주아주 뜨거운 뙤약볕이 내리쬐는 여름 절정의 날씨에 땀 지대로 뺐다..

 

 

 

 

엠모드로..

CPL필터 꽂고..

 

 

 

 

 

 

 

 

 

 

 

 

 

 

 

 

 

 

 

 

 

 

 

 

 

 

 

 

 

 

 

 

 

 

 

 

 

 

 

 

 

 

 

 

 

 

 

 

 

 

 

 

 

햇살이 너무 뜨거워 입구에서 밀짚모자 하나씩 사 쓰고..

 

 

 

 

 

 

 

 

 

입구에서 서원을 향하다 오른쪽으로 보면 강너머 우측으로 뻗어나가고 있는 시원한 산줄기를 만난다.

바로 서취병이다..

 

 

 

 

 

 

 

 

또, 시사단 뒤쪽을 보면 저렇게 좌측으로 뻗어나가고 있는 산줄기를 만난다.

동취병이다..

 

청량산에서 부터 발원한 동취병과 서취병이 도산서원 앞에서 합쳐지는 공읍지지(拱揖之地)의 풍수형국을 잘 보여주는 전경이다..

이처럼 도산서원은 풍수학적으로 철두철미하게 계산된 곳에 세워졌다..

 

 

 

 

 

 

 

 

운영대에서 바라본 시사단..

 

조선시대 과거는 궁궐에서만 치뤄졌다..

하지만 단 한번의 예외..

퇴계사후, 퇴계를 흠모하던 정조가 신하들을 보내 이곳 도산서원에서 전국에서 모여든 7,200여명의 선비가 퇴계선생께 제사를 지내고,

3,600여명의 선비들이 과거시험을 치뤘다고 한다..

그 과거시험인 도산별과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것이 바로 시사단이다..

 

 

 

 

 

 

 

 

 

운영대를 돌아들면 안온한 산자락에 안긴 도산서원이 보인다..

 

 

 

 

 

 

 

 

 

장영훈교수님의 풍수학적 해설에 의하면,

서원을 둘러싸고 있는 도산은 탐스러운 꽃봉우리처럼 생겼으며, 도산 꽃봉우리 중앙에 택지한 화심형(花心形)의 풍수형국이란다..

이렇게 도산이 질그릇처럼 빚어놓은 장풍국면 안에 서원은 자리한다..

 

 

 

 

 

 

 

 

 

도산서원의 학자수는 은행나무가 아니고, 이렇게 회화나무가 학자수이다..

 

 

 

 

 

 

 

 

 

열정..

 

 

 

 

 

 

 

 

 

도산서원의 정문..

 

 

 

 

 

 

 

 

 

정문을 들어서면 계단위의 공간이 도산서원의 공간이고,

그 아래 우측편이 도산서당의 공간이다..

 

사대부 풍수의 대가였던 퇴계선생은 이 도산서당을 짓기위해 노년에 7년을 거쳐 터를 잡았고, 직접 설계하고 4년을 거쳐 완성하였다..

 

도산서당을 읽는다는 것은 도산서원을 이해하는 첫 관문인 셈이다..

 

 

 

 

 

 

 

 

 

몽천..

 

 

 

 

 

 

 

 

 

이렇게 도산서당의 담장은 4곳이나 트여있다..

서쪽으로 난 문은 제자들이 기거했던 기숙사로 통하고..

 

 

 

 

 

 

 

 

 

남쪽으로 난 문은 서당 정문이고..

 

 

 

 

 

 

 

 

 

동남쪽으로 난 문과 동쪽으로 난 문은 자연풍광을 담기 위한 문이다..

 

 

 

 

 

 

 

 

 

정우당에는 연을 심었고..

 

 

 

 

 

 

 

 

 

완락재 마루에서 바라 본 완락(玩樂)의 공간..  (여기서 완락이란 즐겨 구경함 속에 즐거움이 있다는 뜻)

그때 그시절 퇴계선생의 시선으로 이 공간을 바라본다면 더 할 나위없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제자들이 공부하던 암서헌 마루에는 이렇게 살평상이 덧 붙어 있다..

 

이 살평상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전해진다..

 

퇴계의 명성으로 도산서당에는 제자들의 수가 점점 더 늘어나,

암서헌의 좁은 마루에서 모두 다 앉아 공부 할 수 가 없는것을 본 퇴계의 제자이자 당시 안동부사였던 한강 정구가 저렇게 살평상 하나를 기증했다.

그러나 퇴계는 공사를 구분하지 못하고 국고를 사적으로 썻다 하여 엄하게 꾸짖었다..

하지만 스승으로 부터 질타가 있을 것을 예상한 한강 정구 또한 퇴계정신을 이어 받은 목민관인지라,

그간 살평상을 준비하면서 썻던 가계부를 스승앞에 내놓았다..

거기에는 몇월 녹봉에서 얼마를 떼어서 저축하였고, 반찬수 몇가지를 줄여서 얼마를 모았다는 세세한 기록이 있었다..

이를 본 퇴계가 그제서야 허허 웃었다는 얘기가 있다..

 

그냥 편하게 앉아서 쉬었다가는 마루이지만 알고 보면...

 

참!! 한강 정구선생은 한훤당 김굉필선생의 외증손으로 달성 도동서원을 세우신 분...

 

 

 

 

 

 

 

 

퇴계선생이 기거했던 공부방인 완락재 내부..

서쪽 부엌쪽으로 밀어 낸 저 공간에 고서 1천여권을 꽂아 놓고 독서에 매진했다고 하는 공간..

 

 

 

 

 

 

 

 

완락재 현판..

 

 

 

 

 

 

 

 

 

암서헌 현판..

 

 

 

 

 

 

 

 

 

도산서원의 도산은 서원 배산에서 따온 명칭인 까닭에 山자도 산처럼 그려 놓았다..

 

 

 

 

 

 

 

 

 

동쪽 문 밖에는 절우사라는 표석이 보인다..

이곳에 매, 죽, 국, 송을 심어 절개를 지키는 벗들을 선비정신으로 놓고서 완상, 완락하던 공간임을 알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나치는 경관 감상 포인트..

절우사 표석을 지나 동쪽 언덕을 약간만 오르면 이렇게 도산서당과 도산서원을 모두 조망 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예전 천원짜리 지폐 뒷면에 나오던 풍광이다..

가운데 도산서당 뒷편 담장을 기준으로 아래는 도산서당의 공간이고,

위쪽으로는 도산 서원의 공간인 것이다..

 

 

 

 

 

 

 

 

 

또 하나의 완락의 공간인 매화원..

사군자 중 매화를 좋아했던 퇴계가 직접 조성했다는 매화나무 정원이다..

 

 

 

 

 

 

 

 

이제는 서원의 공간으로 진입한다..

 

 

 

 

 

 

 

 

 

외삼문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면 통로 계단을 중심으로 좌측은 비워있고, 우측은 건물들로 가득찼다..

이는 풍수학적으로 볼때 도산서원이 들어선 자리가 좌상(左上)의 풍수이기 때문에 계단 좌측에 잉(孕)과 식(息), 동재 및 도산서당의 공간을 배치하였고,

계단 우측에는 전사청, 고직사, 서재등 상대적으로 낮은 신분이 기거하는 우하(右下)공간을 배치하여 예제 신분에 따른 풍수배치를 했기 때문이다..

그냥 일부러 공간을 비워둔것이 아니다..

 

 

 

 

 

 

 

 

 

도산서당 뒷편에는 이렇게 용도 불명의 담장이 일직선으로 있고, 나무가 한 그루 있다..

자세히 보면 나무와 완락재가 남북으로 일직선상에 놓여있다..

저 나무가 바로 도산서당에 생기를 넣어주는 풍수나무인 잉(孕)나무이다..

 

왼쪽의 담장 좌측, 그러니까 도산서당 뒷쪽 담장 공간에는 ..

 

 

 

 

 

 

 

 

 

저렇게 지표면이 출렁거리는 식(息)현상이 나타나는데, 이를 보호하기 위해.. 

 

 

 

 

 

 

 

 

 

이렇게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부러 담장을 쳐서 식을 보호하고 있는것이다..

 

 

 

 

 

 

 

 

 

진도문과 나란한 곳에 광명실..

책을 보관했다고 하니 장서각이 되겠네..

 

 

 

 

 

 

 

 

 

외삼문인 진도문을 지나면..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도(道)앞에 나가자..  진도..

 

 

 

 

 

 

 

 

전교당..

네칸 건물에 현판을 달려고 하다 보니, 중앙 기둥에 달지 못하고 오른쪽 공간에 현판을 달았다..

 

아래사진과 비교하면..

 

 

 

 

 

 

 

 

일두선생을 모신 함양 남계서원의 명성당은 전교당과 같은 네칸 건물이지만 아예 현판을 두동강 내버렸다..

 

또 다른 예로..

 

 

 

 

 

 

 

 

소수서원의 강당인 명륜당이다..

모두 같은 네칸 건물이지만 이곳은 현판 자체를 아예 정면에 달지 않고..

아래와 같이..

 

 

 

 

 

 

 

 

우측에 세칸기둥 정면에 현판을 달았다..

부석사 안양루와 같이 측면이 정면이 된 셈이다..

 

문화재도 알고 보면 참 재미있다..

 

 

 

 

 

 

 

 

 

전교당 마루에 앉아 좀 쉬자..

 

 

 

 

 

 

 

 

 

퇴계 제자 류성룡의 절친이었던 한석봉이 썻다는 현판..

친구의 부탁이었으니 더욱 정성껏 썼을 것이다.

 

 

 

 

 

 

 

 

 

전교당 현판..

 

 

 

 

 

 

 

 

 

전교당 우측의 우협실인 한존재.. 지금으로 치면 전교당은 대학 본관이며, 한존재는 대학 총장실이다..

 

왜 총장이 한가한 존재가 되어야 했을까?

 

 

 

 

 

 

 

 

 

좌,우협실이 있는 다른 서원의 강당과는 다르게 전교당은 좌협실이 생략되었다..

 

좌상인 풍수에서 좌측을 극상의 공간으로 남기기 위해서일까?

 

 

 

 

 

 

 

 

조명시설인 정료대..

 

서원을 다녀보면 어느 서원을 가도 항상 정료대는 하나만 세워져 있는데,

왜 하나만 세워져 있을까?

 

여러개를 두고 여러곳에서 불을 지피면 더 밝았을 텐데..

화재의 위험 때문일까?

 

단종을 폐하고 세조찬탈사건이 있었을때, 당시로는 서울대학교였던 집현전 학사들이 극심한 반기를 들고

이미 왕위에 오른 세조에게 "전하" 대신 "나으리"라 불렀다..

이에 사육신들에게 마지막으로 왜 그렇게 불렀는지 이유를 묻자..

"하늘에 해가 하나이듯, 충신은 결코 두임금을 섬기지 않는다"라는 불사이군을 밝혔다는데서 유래가 되어,

서원에도 해를 상징하는 정료대를 두개 세우지 않는다고 한다..

 

 

 

 

 

 

 

 

 

동재인 박약재..

좌상우하 이므로 선배들의 기숙공간..

 

 

 

 

 

 

 

 

 

서재인 홍의재..

상대적으로 후배들의 기숙공간..

 

 

 

 

 

 

 

 

 

여기서 잠깐..

동재의 기단에서 서재의 기단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건너편 서재의 기단이 동재의 기단보다 약간 더 높다..

모든 서원들에서 공통적으로 관찰된다..

동재가 서재보다 선배들의 공간이다 보니,

동재=아랫목, 서재=윗목이라는 자연스런 공식이 성립하는 것이다.

 

 

 

 

 

 

 

 

 

전교당 좌측의 장판각..

 

 

 

 

 

 

 

 

 

내삼문의 삼태극 문양..

자세히 보면 가운데 문양만 색깔배치가 다르다..

 

 

 

 

 

 

 

 

 

소수서원 다음으로 세워진 남계서원처럼 배향이 우선이 아닌, 강학을 우선시 했기 때문에 이곳도 전학후묘의 배치를 보인다..

옥산서원, 병산서원, 도동서원처럼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때 훼철되지 않고 살아남은 27개 서원들의 대부분 특징인 것이다..

서원에서 공부를 해야지 제사지내기 위해 나라 재정을 파탄내고 국녹만 받아 먹는 서원은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사당마당의 돌길도 사당 좌측으로만 연결되어 있는데..

좌측으로 들어온 혼령이 우측으로 나가지 말고, 사당에 안주하길 원하는 뜻에서 우측길을 아예 없애 버린것이다..

 

 

 

 

 

 

 

 

 

굳게 닫힌 내삼문을 넘어본 상덕사 현판..

 

 

 

 

 

 

 

 

 

전교당 뒷편의 전사청..

사당에서 제사를 지낼때 음식을 준비하는 공간이다.

노비들이 들락거리는 공간이었기 때문에 우하의 공간인 상덕사의 우측공간에 배치했다..

 

 

 

 

 

 

 

 

 

쪽문 넘어에 상덕사..

전사청 건물 두채가 모두 두칸짜리 건물이다,

제사를 지내는 공간은 음택공간이기 때문에 음수(짝수)로 맞춘 것이다..

 

두 외국인이 너무 진지하게 눈물을 흘리며 얘기를 하는데,

얼핏 들어보니 오른쪽 여자칭구 부모 중 한분이 한국인이라서 한국에 올때면 부모님 생각이 많이 나서 슬프단다.. 맞나?

 

 

 

 

 

 

 

 

 

전사청에서 바라본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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